성과의 뒷면: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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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것

누군가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무엇을 했는가”를 묻게 된다. 어떤 프로젝트를 이끌었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어떤 수치를 달성했는지. 성과란 곧 행위의 결과이고, 행위는 곧 주어를 필요로 하니까. “누가 무엇을 했는가”. 성과에는 늘 명확한 주인이 있다.

그런데 가끔 나는 “그 사람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필요하지만 하지 않아도 됐던 일

여기서 “하지 않은 것”이란 필요 없어서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히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그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됐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 일을 안 해도 되도록 도와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무대 위에서 훌륭한 발표를 해냈다면, 우리는 그의 전달력이나 논리 구성, 준비성을 칭찬한다. 그런데 그가 발표만 신경 쓸 수 있었던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일을 해준 사람들이 있다. 데이터를 정리한 사람, 일정을 조율한 사람, 발표 자료의 디자인을 다듬은 사람, 리허설 환경을 세팅한 사람, 혹시 모를 기술적 문제를 미리 점검한 사람. 발표자가 “하지 않아도 됐던” 일을 해준 사람들 덕분에,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거다.

업무 분담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업무 분담이라는 건 각자의 영역이 명확히 나뉘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서포트는 좀 다르다. 상대방의 영역에 있는 마찰과 잡음을 줄여주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때로는 상대방이 그런 마찰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잘 된 서포트는 티가 나지 않는다. 문제가 터지지 않았고, 지연이 발생하지 않았고, 고민해야 할 것이 하나 줄었다. 근데 “일어나지 않은 일”은 기록으로 남기기가 어렵다.

나는 뭘 해낸 거지?

그래서 서포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는 좀 독특한 딜레마가 생긴다. “나는 뭘 해낸 거지?”라는 질문이다.

프로젝트가 성공했다. 팀이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내 이름이 붙는 결과물은 없다. 내가 만든 산출물은 누군가의 산출물 안에 녹아 들어갔거나, 아예 산출물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은 “그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 것”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다. “저는 이번 분기에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성과 리뷰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까.

이건 단지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기 일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면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번아웃은 과로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의미의 부재에서도 오는데, 내가 매일 하는 일이 무언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아무리 팀이 잘 돌아가고 있어도 어느 순간 동력을 잃게 된다.

다른 프레임으로 보기

그래서 나는 서포트의 성과를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만들었는가” 대신, “내가 있음으로써 상대방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됐는가”로.

이 프레임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측정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제거한 마찰의 크기인데, 어떤 프로세스가 원래 3일 걸리던 것을 1일로 줄였다면 그 2일의 차이가 곧 서포트의 성과다. 다만 이런 종류의 기여는 비교 대상이 있어야 보인다. “원래는 이만큼 걸렸는데”라는 전제가 공유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1일짜리 일이었다고 인식될 뿐이니까.

다음은 확보해준 시간이다. 누군가가 본연의 업무에 쏟을 수 있었던 시간, 다시 말해 부수적인 일에 빼앗기지 않은 시간은 서포트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건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의 문제이기도 한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같은 사람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낸다.

그리고 가장 과소평가되는 것 중 하나가 의사결정의 질을 높인 정보 제공이다. 좋은 판단은 좋은 정보 위에 서 있는데,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해서 건넨 사람, 복잡한 상황을 구조화해서 선택지를 명확하게 만들어준 사람이 있다면, 최종 결정은 다른 누군가가 내렸더라도 그 결정의 질은 정보를 정리한 사람의 기여 위에 세워진 거다.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의 의미

물론 이 모든 것을 성과로 증명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서포트의 본질이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능하게 만드는 거라면, 그 성과가 나왔을 때 기여의 인과관계를 분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발표가 성공한 게 발표자의 역량 때문인지, 자료를 정리한 사람의 기여 때문인지, 혹은 그날 관객의 분위기 때문인지를 정확히 나눌 수는 없다.

근데 나는 이 불확실성 자체가 서포트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과관계를 깔끔하게 분리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서포트가 다른 사람의 성과와 깊이 엮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좋은 서포트의 지표는 “그 사람의 성과에서 내 기여를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것” 자체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일을 보이게 만드는 것

결국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 번째로, 서포트하는 사람 스스로가 자기 기여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것. “나는 이걸 했다”가 아니라 “나로 인해 이 사람은 이걸 하지 않아도 됐다”라는 문장으로 자기 일의 가치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고, 더 잘 할 수 있다. 숫자로 만들 수 있다면 더 좋고.

두 번째로는, 조직이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성과를 이야기할 때 “누가 무엇을 했는가”만 묻는 조직에서는 조용히 마찰을 줄이고 있는 사람들의 기여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여는 언젠가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늦다.

누군가의 뛰어난 성과를 볼 때, 그가 “한 것”뿐 아니라 그가 “하지 않아도 됐던 것”도 한번 떠올려 보면 좋겠다. 그 목록의 반대편에, 이름 없이 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서포트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뒤에서 마찰을 줄이는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이 앞에 나서면 확실히 다르다. 서포트는 도착지가 아니라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거쳐 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