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빛나는 사람되기

· 7분

쉽다는 착각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는 방법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꾸준히 하기, 포기하지 않기, 제대로 하기. 이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거나, 애써 흐린 눈을 하며 더 편한 길을 찾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람들이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기본을 지키는 게 워낙 어려운 일이라, 못 지키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한 번 해보는 건 너무 당연하고 쉬우니까 만만하게 보기 쉽지만, 그걸 꾸준히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일주일 정도 해봐서는, 앞으로 몇 년간 들어갈 노력의 크기를 절대 미리 알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긴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정답으로 가는 길은 과소평가하고 자기 자신은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보기

과소평가랑 과대평가라고 따로 적긴 했는데, 사실 이 둘은 같은 이야기이다. 결국 상황을 있는 그대로 못 보는 건데,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한테 편한 쪽으로 보게 되니까 해야 할 일은 실제보다 만만해 보이고 자기 실력은 실제보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저 정도는 나도 금방 하지” 같은 생각이 드는 건데, 결국 둘 다 같은 이유로 잘못된 평가인 셈이다.

그리고 보통 여기에 남이 이룬 것까지 실제보다 작게 보는 게 같이 온다. 사실 남을 깎아내리는 거랑 자기를 부풀리는 건 같은 이야기인데, 저 사람이 해낸 게 그냥 운이었다거나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큼 내가 커 보이니까 그렇다. 그래서 이 셋은 늘 같이 다니는데, 나를 크게 보고 일이랑 남을 작게 보는 게 결국 죄다 지금 당장 마음 편한 쪽이라 그렇다.

이건 감정 문제라기보다 사람이 원래 그렇게 본다는 쪽에 가깝다. 편한 쪽으로 슬쩍 보정해서 보는 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고, 다만 그렇게 왜곡된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 잘 맞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필요한 건 대단한 의지 같은 게 아니라, 부풀리고 줄여서 보던 걸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시 한번 보는 일이다.

지름길엔 남는 게 없다

이렇게 부풀려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게 지름길이다. 일은 만만해 보이고 나는 그럴듯해 보이니까, 굳이 오래 걸리는 길을 돌아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거다. 흐린 눈을 하고 편한 길을 찾게 되는 것도 대개 여기서부터다.

사실 지름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고른 지름길이 될 것 같아서 고른 게 아니라 그냥 쉬워 보여서 고른 거라는 데 있다. 실제가 어떤지 제대로 못 봤으니 웬만하면 잘 안 풀리고, 이때 지름길은 제대로 된 길이랑 결정적으로 갈린다. 제대로 걸어온 사람은 목표에 닿지 못했어도 그동안 쌓아온 게 손에 남는데, 지름길은 애초에 그 쌓는 과정을 건너뛰는 거라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그러면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딛고 설 게 없다. 그러다 이 한 번의 실패가 내 인생 전체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면, 거기서부터가 어둠이다.

나도 거기 갇힌 적이 있다

내가 이십 대 때는 삼십 대가 되기 전에 크게 성공하는 것이 목표였고, 삼십 대에 성공하지 못한 미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문제도 있었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 요인도 있어서, 목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목표는 높았고, 현실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부분투성이였고, 그래서 지름길을 찾게 됐지만 그것이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 상황과 느꼈던 감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목표를 달성할 기간을 너무 짧게 잡아서, 지름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실패가 더 크게 느껴졌을 뿐이다. 똑같이 실패하더라도 훨씬 긴 기간을 놓고 보면 지나가는 수많은 실패 중 하나였을 텐데, 그저 지름길을 택한 탓에 실패의 비중이 더 커졌을 뿐이다.

결국 그런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새로운 지름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알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게 기준과 목표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기간을 늘리면 목표가 커진다

그래서 지금은 잣대부터 길게 다시 잡아두고 있다. 기간을 길게 잡으면 두 가지가 달라진다.

하나는 아까 말한 그 뻔한 정답을 이제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거다. 꾸준히 하기나 포기하지 않기 같은 건 어차피 시간이 있어야 되는 얘기라서, 기간이 짧으면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쓸 수가 없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두면 이 방법들이 비로소 손에 잡힌다.

다른 하나는 목표가 오히려 커진다는 거다. 길게 본다고 하면 왠지 느슨해지는 쪽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삼 년 안에 될 만한 것만 놓고 고르면 목표도 딱 그 안에서 잘리는데, 삼 년 만에 되는 것 중에 그렇게 대단한 건 별로 없다. 십 년을 쓸 수 있으면 아예 잡을 수 있는 목표의 수준 자체가 올라간다.

그래서 요즘은 십 년 뒤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십 년 뒤에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지금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라, 꽤 높게 잡아뒀다.

십 년을 어떻게 버티나

대신 그만큼 오래 버텨야 한다.

오래 걸려서 쌓이는 것들은 중간에 이렇다 할 보상이 없다. 반년을 부어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을 수 있고, 심지어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조차 확인이 안 된다. 그에 비하면 지름길은 그래도 빨리빨리 답을 준다. 맞았는지 틀렸는지 금방 알려주니까 상대적으로 덜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이 든다. 이렇게까지 십 년을 쓰는 게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건 마음 단단히 먹는다고 없어지는 질문이 아니라서, 결과가 안 보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꾸 다시 떠오른다.

먼저 가 있는 사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부터 십 년을 꼬박 쏟아부으면 그 끝에 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근데 이걸 혼자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면 잘 잡히지 않는다.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시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대신 이미 그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을 본다. 나보다 십 년쯤 더 살았고, 그 시간을 잘 써서 훌륭해진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별생각 없이도 저 사람 대단하다고, 나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면 그게 곧 답이 된다. 내가 저 사람을 훌륭하다고 평가한다는 건, 내가 십 년 뒤에 저 정도가 되면 그때의 나도 지금 이 시간을 아깝다고 여기진 않으리라는 뜻이니까. 십 년 뒤의 나한테 지금 당장 물어볼 수는 없어도, 이미 십 년 앞에 가 있는 사람을 기준 삼아 대신 물어볼 수는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건 앞에서 한 얘기랑도 이어진다. 이 방법은 남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아야 쓸 수 있다. 남이 이룬 걸 습관처럼 깎아내리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봐도 별거 아니라고 넘겨버릴 텐데, 그러면 기준으로 삼을 사람 자체가 사라진다. 남을 제대로 봐주는 게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앞길을 비춰주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 사람이 나보다 열 살이 많든 스무 살이 많든, 내가 저 사람을 훌륭하다고 보는 데에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이가 걸리는 거였다면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덜 훌륭해 보였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그러니 나도 지금 내 나이를 두고 이미 늦었네 어쩌네 할 이유가 없는 거다.

남을 기준으로 삼지 않기

물론 남을 제대로 봐주는 거랑 남을 내 기준으로 삼는 건 좀 다른 얘기다.

짧게 보면 아무래도 자꾸 남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지금 누가 앞서 있는지, 나는 몇 등쯤인지 계속 신경 쓰게 되는 건데, 기간이 짧으면 내 위치를 확인할 방법이 남이랑 비교하는 것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당장 결과가 안 나오니까 남과의 거리로 대신 재보는 거다.

근데 길게 잡으면 이게 잘 안 통한다. 십 년 뒤에 되고 싶은 내 모습은 남이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옆 사람이 지금 나보다 앞서 있든 말든 그게 내 십 년 뒤랑은 별 관계가 없다. 비교를 해봐야 딱히 건질 게 없는 거다. 그러니 남이 이룬 건 이룬 대로 인정하되, 내가 지금 어디쯤인지는 남이 아니라 내 기준에 대고 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남 눈치를 잘 안 본다. 딱히 내가 사람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눈치를 봐도 별로 얻을 게 없어서다.

빛나려고 해서 빛나는 게 아니다

다시 걷기로 하면서 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내 기간이랑 목표를 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방법을 꾸준히 지키기로 했다. 그러면 설령 실패해도 뭔가는 남고, 남는 게 있으니 또 계속할 수 있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판단의 기준이 남이 아니라 나한테로 넘어와 있다.

그래서 어떤 길을 골랐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지름길로 가든 멀고 힘든 길로 가든, 자기 상황을 정직하게 보고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그걸 꾸준히 지켜나가는 사람은 옆에서 봐도 빛나 보인다. 빛나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있으면 밖에서 볼 때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아마 그랬을 거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계산해서 그 자리에 간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기준대로 오래 버티다 보니 그렇게 보이게 된 쪽에 가까울 거다.

나는 이 길이 옳다는 걸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한 번은 현실의 벽에 막혀 주저앉았지만, 이번엔 그게 왜 어려운지도 알고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도 안다. 그래서 다시 간다. 십 년은 생각보다 길고, 나는 이제 막 다시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