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빛나는 사람되기
· 8분
쉽다는 착각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는 방법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꾸준히 하기, 포기하지 않기, 제대로 하기. 이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거나, 애써 흐린 눈을 하며 더 편한 길을 찾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람들이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기본을 지키는 게 워낙 어려운 일이라, 못 지키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한 번 해보는 건 너무 당연하고 쉬우니까 만만하게 보기 쉽지만, 그걸 꾸준히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일주일 정도 해봐서는, 앞으로 몇 년간 들어갈 노력의 크기를 절대 미리 알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긴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정답으로 가는 길은 과소평가하고 자기 자신은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보기
과소평가랑 과대평가라고 따로 적긴 했는데, 사실 이 둘은 같은 이야기이다. 결국 상황을 있는 그대로 못 보는 건데,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한테 편한 쪽으로 보게 되니까 해야 할 일은 실제보다 만만해 보이고 자기 실력은 실제보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저 정도는 나도 금방 하지” 같은 생각이 드는 건데, 결국 둘 다 같은 이유로 잘못된 평가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보통 하나가 더 붙는다. 남이 이룬 것까지 실제보다 작게 보는 거다. 사실 남을 깎아내리는 거랑 자기를 부풀리는 건 같은 이야기인데, 저 사람이 해낸 게 그냥 운이었다거나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큼 내가 커 보이니까 그렇다. 그래서 이 셋은 늘 같이 붙어 다닌다. 나는 크게 보고 일이랑 남은 작게 보고, 방향이 죄다 지금 당장 마음 편한 쪽이다.
나는 이걸 굳이 감정 탓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편한 쪽으로 슬쩍 보정해서 보는 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에 가깝고, 다만 그렇게 왜곡된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 잘 맞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필요한 건 대단한 의지 같은 게 아니라, 부풀리고 줄여서 보던 걸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시 한번 보는 일이다.
지름길엔 남는 게 없다
이렇게 부풀려서 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게 지름길이다. 일은 만만해 보이고 나는 그럴듯해 보이니까, 굳이 오래 걸리는 길을 돌아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거다. 흐린 눈을 하고 편한 길을 찾게 되는 것도 대개 여기서부터다.
사실 지름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고른 지름길이 될 것 같아서 고른 게 아니라 그냥 쉬워 보여서 고른 거라는 데 있다. 실제가 어떤지 제대로 못 봤으니 웬만하면 잘 안 풀리고, 이때 지름길은 제대로 된 길이랑 결정적으로 갈린다. 제대로 걸어온 사람은 목표에 닿지 못했어도 그동안 쌓아온 게 손에 남는데, 지름길은 애초에 그 쌓는 과정을 건너뛰는 거라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그러면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딛고 설 게 없다. 그러다 이 한 번의 실패가 내 인생 전체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면, 거기서부터가 어둠이다.
나도 거기 갇힌 적이 있다
나도 이십 대 후반에 몇 년간 그 어둠에 갇혀 있었다.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느꼈는데, 지금 돌아보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길이 옳은지는 그때도 알고 있었다. 꾸준히, 제대로, 오래. 아는 게 부족했던 적은 없다. 다만 아는 것과 그걸 몇 년씩 버텨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때의 절망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라면 나올 만한 감정이었으니까. 다만 내가 그때 잘못 본 게 하나 있다면 그건 감정이 아니라 실패의 크기였다. 삼 년만 놓고 보는 사람한테 이 년짜리 실패는 인생의 거의 전부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니까.
그러니까 나를 무너뜨린 건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크기를 재던 잣대였다. 똑같은 실패라도 이십 년을 놓고 보면 그냥 지나가는 한 구간이 된다. 벌어진 일도 그대로고 거기에 반응하는 내 방식도 그대로인데 느낌만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새로운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원래 알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게 잣대부터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기간을 늘리면 목표가 커진다
그래서 지금은 잣대부터 길게 다시 잡아두고 있다. 기간을 길게 잡으면 두 가지가 달라진다.
하나는 아까 말한 그 뻔한 정답을 이제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거다. 꾸준히 하기나 포기하지 않기 같은 건 어차피 시간이 있어야 되는 얘기라서, 기간이 짧으면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쓸 수가 없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두면 이 방법들이 비로소 손에 잡힌다.
다른 하나는 목표가 오히려 커진다는 거다. 길게 본다고 하면 왠지 느슨해지는 쪽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삼 년 안에 될 만한 것만 놓고 고르면 목표도 딱 그 안에서 잘리는데, 삼 년 만에 되는 것 중에 그렇게 대단한 건 별로 없다. 십 년을 쓸 수 있으면 아예 잡을 수 있는 목표의 수준 자체가 올라간다.
그래서 요즘은 십 년 뒤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십 년 뒤에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지금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라, 꽤 높게 잡아뒀다.
십 년을 어떻게 버티나
대신 그만큼 오래 버텨야 한다.
오래 걸려서 쌓이는 것들은 중간에 이렇다 할 보상이 없다. 반년을 부어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을 수 있고, 심지어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조차 확인이 안 된다. 그에 비하면 지름길은 그래도 빨리빨리 답을 준다. 맞았는지 틀렸는지 금방 알려주니까 상대적으로 덜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이 든다. 이렇게까지 십 년을 쓰는 게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건 마음 단단히 먹는다고 없어지는 질문이 아니라서, 결과가 안 보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꾸 다시 떠오른다.
먼저 가 있는 사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부터 십 년을 꼬박 쏟아부으면 그 끝에 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근데 이걸 혼자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면 잘 잡히지 않는다.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시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대신 이미 그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을 본다. 나보다 십 년쯤 더 살았고, 그 시간을 잘 써서 훌륭해진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별생각 없이도 저 사람 대단하다고, 나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면 그게 곧 답이 된다. 내가 저 사람을 훌륭하다고 평가한다는 건, 내가 십 년 뒤에 저 정도가 되면 그때의 나도 지금 이 시간을 아깝다고 여기진 않으리라는 뜻이니까. 십 년 뒤의 나한테 지금 당장 물어볼 수는 없어도, 이미 십 년 앞에 가 있는 사람을 기준 삼아 대신 물어볼 수는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건 앞에서 한 얘기랑도 이어진다. 이 방법은 남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아야 쓸 수 있다. 남이 이룬 걸 습관처럼 깎아내리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봐도 별거 아니라고 넘겨버릴 텐데, 그러면 기준으로 삼을 사람 자체가 사라진다. 남을 제대로 봐주는 게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앞길을 비춰주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 사람이 나보다 열 살이 많든 스무 살이 많든, 내가 저 사람을 훌륭하다고 보는 데에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이가 걸리는 거였다면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덜 훌륭해 보였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그러니 나도 지금 내 나이를 두고 이미 늦었네 어쩌네 할 이유가 없는 거다.
남을 기준으로 삼지 않기
물론 남을 제대로 봐주는 거랑 남을 내 기준으로 삼는 건 좀 다른 얘기다.
짧게 보면 아무래도 자꾸 남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지금 누가 앞서 있는지, 나는 몇 등쯤인지 계속 신경 쓰게 되는 건데, 기간이 짧으면 내 위치를 확인할 방법이 남이랑 비교하는 것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당장 결과가 안 나오니까 남과의 거리로 대신 재보는 거다.
근데 길게 잡으면 이게 잘 안 통한다. 십 년 뒤에 되고 싶은 내 모습은 남이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옆 사람이 지금 나보다 앞서 있든 말든 그게 내 십 년 뒤랑은 별 관계가 없다. 비교를 해봐야 딱히 건질 게 없는 거다. 그러니 남이 이룬 건 이룬 대로 인정하되, 내가 지금 어디쯤인지는 남이 아니라 내 기준에 대고 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남 눈치를 잘 안 본다. 딱히 내가 사람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눈치를 봐도 별로 얻을 게 없어서다.
빛나려고 해서 빛나는 게 아니다
다시 걷기로 하면서 내가 붙잡은 건 결국 이거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내 기간이랑 목표를 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방법을 꾸준히 지키는 것. 그러면 설령 실패해도 뭔가는 남고, 남는 게 있으니 또 계속할 수 있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판단의 기준이 남이 아니라 나한테로 넘어와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길을 골랐느냐가 아니다. 지름길로 가든 멀고 힘든 길로 가든, 자기 상황을 정직하게 보고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그걸 꾸준히 지켜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옆에서 봐도 빛나 보인다. 빛나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흔들리는 상태가 밖에서 보면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내가 훌륭하다고 봤던 그 사람들도 아마 그랬을 거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계산해서 그 자리에 간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기준대로 오래 버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게 된 쪽에 가까울 거다.
나는 이 길이 옳다는 걸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한 번은 현실의 벽에 막혀 주저앉았지만, 이번엔 그게 왜 어려운지도 알고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도 안다. 그래서 다시 간다. 십 년은 생각보다 길고, 나는 이제 막 다시 출발선에 섰다.